[책소개]
어린 시절 말리 극장의 배우들을 보면서 생긴 ‘어떻게 역할은 창조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연기에 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고민은 예술-문학 협회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작업을 통해 ‘매번 원하는 역할을 창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로 이어졌고, 그 답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시스템은 어느 순간에 나타난 획기적인 방법이 아닌 스타니슬랍스키 일생의 작업인 것이다. 그가 살아내야 했던 시대적 상황, 수많은 사상과 이론들, 함께 한 예술가들의 영향 속에서 본인이 경험하고 관찰한 모든 것이 시스템의 내용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으로 전해져 스트라스버그에 의해 미국만의 색깔을 덧씌운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로 완성된다. 현재 시스템과 메소드는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연구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스템의 형성부터 메소드까지의 변화를 중심으로 시스템의 지형을 분석·정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시스템부터 메소드로의 흐름을 주요 사건과 작업 과정으로 짚어가며 시스템에서 메소드로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구축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비교분석에서는 시스템에서 메소드로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체험’과 배우의 ‘이중 의식’, ‘정서 기억’, ‘행동’을 중심으로 양자를 비교하여 연기론으로서 체계를 유지하는 전제, 내용, 전달 언어, 즉 내·외적 측면 모두의 차이를 확인했다. 이것은 두 연기론의 진화 과정과 그 연유까지를 파악하여 시스템의 지형학적 이해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 과정은 시스템과 메소드를 이해하는 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두 연기론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는 것으로써 근본적인 연기론에 관한 정의를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연기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1. 출판사 서평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간의 삶과 의사소통 방식은 변화하고,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연기도 그에 따라 양식이 변화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연기에 관한 다양한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연기론은 계속해서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연기론이라 할지라도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y)의 시스템(System)을 만난 근대 이후 연기론은 그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이 같은 현상은 그의 러시아 제자들과 시스템의 미국 계승이라 하는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American Acting Method)뿐만 아니라, 그에게 반대된 의견을 제시했던 예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나 표세볼로트 메이어홀드(Vsevolod Meyerhold)의 연기론도 그 바탕에는 시스템에 관한 연구가 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또한, 시스템은 계속해서 변형·발전하면서 지금까지 무대, 영상 연기 작업에 적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연기 훈련법 대부분은 시스템의 일부분, 또는 변형적 적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절대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은 수많은 연구를 탄생시켰다. 특히 연극과 영상 연기 모두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경우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구는 여러 단계를 거친 중역본의 절대적 수용과 기간의 격차들을 두고 여러 경로로 유입된 관련 연구 자료의 영향 아래 기형적인 연구 지형을 이루고 있다. 시스템의 인기 있는 특정 요소에 관한 훈련과 적용사례, 심리·신체적 측면 간이나 다른 연기론과 단순 비교 등에 부분적으로 비대해진 연구들이 해외 자료의 유입에 따라 불균형적으로 발전된 것이라 하겠다.
본 연구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연구 지형을 이해하고, 새로운 시각의 논의에 바탕이 되기 위한 시스템의 지형학(Geography) 연구이다. 그중에서도 시스템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메소드로의 변화에 집중하여 시스템을 분석·정리한다. 이 과정은 현재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는 연기론에 속하는 시스템과 메소드의 탄생과 진화를 연구하는 것으로서 양자를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며,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연기론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배우의 작업과 교육 대부분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영향권 안에 있으면서도, 시스템을 철 지난 연기론으로 치부하며 새로운 연기론을 갈망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주제에 대해 “또 스타니슬랍스키”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타니슬랍스키 학자인 소냐 무어(Sonia Moore)가 시스템은 연극 예술의 과학으로서, 항상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며 무한한 실험과 발견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듯이 시스템은 계속해서 변형 발전되고 있기에 이에 관한 연구는 멈출 수 없다(The Stanislavski System 6). 본 연구가 시스템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 중에 속하는 실험과 발견이 되어, 앞으로의 시스템 가치 평가와 재인식, 그리고 연구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2. 목차
Ⅰ 서론 _7
1. 연구의 목적과 구성 _8
2. 선행 연구 검토 _13
Ⅱ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이론적 고찰 _19
1. 시스템의 탄생 배경 _20
2. 시스템의 발단: 예술-문학 협회(The Society of Art and Literature) _32
3. 시스템의 실천과 검증: 모스크바 예술극장(Moscow Art Theatre) _43
4. 시스템 관련 스타니슬랍스키 저술의 분석과 이해 _58
5. 시스템 관련 스타니슬랍스키 저술의 출판과 번역 _70
Ⅲ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의 이론적 고찰 _81
1. 메소드의 탄생 배경: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미국 순회공연 _82
2. 메소드의 발단: 미국 실험극장(American Laboratory Theatre) _98
3. 메소드의 형성: 그룹 시어터(The Group Theatre) _114
4. 메소드의 핵: 액터스 스튜디오(The Actors Studio) _134
Ⅳ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과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 비교분석 _153
1. 체험(Experiencing)과 이중 의식(Double consciousness) _154
2. 정서 기억(Emotion memory) _176
3. 행동(Action) _205
Ⅴ 결론 _233
참고 문헌 _242
부록 _253
1. 시스템 도표(스타니슬랍스키, 루이스, 베네데티, 멀린) _254
2. 스타니슬랍스키 관련 국내출판 현황 _258
3. 스타니슬랍스키 관련 국내연구 현황 _265
3. 본문 중에서
1863년에 태어나 1938년 생을 마감한 스타니슬랍스키는 이처럼 사회적 변화가 극심했던 19세기와 20세기를 경험했다. 다시 말해, ‘근대(Modern)’15로의 변화 속에 스타니슬랍스키의 삶이 있었고, 이에 따라 그의 시스템 역시 근대의 영향권 안에 있음은 당연하다. 이제 대표적인 근대의 특징으로 나누어 시스템 형성 배경을 파악해 보기로 한다.
먼저 개인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신에 종속된 중세에서 고대의 인본주의(Humanism)를 되찾고자 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로 변화하면서 인간 개인에 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이후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거쳐16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는 집단과 사회에 함몰되어 있던 개인의 위치를 자각하고, 그 존재를 분명히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김대현 「‘-되기’의 배역창조와 ‘행위 현장’의 생성성」 . 이렇듯 점차 범위를 좁혀온 인간 개인에 관한 관심은 스타니슬랍스키가 연출자와 배우로서 성과를 이뤄낸 평범한 개인의 삶을 드러내는 사실주의(Realism) 연극을 탄생시킨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극의 형식뿐만 아니라 연기에 있어서도 인물 개개인만의 내면세계를 발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를 위해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이라 하겠다.
(pp.24~25 중에서)
그룹 시어터가 해체된 지 7년 만인 1947년 카잔, 루이스, 크로포드에 의해 ‘액터스 스튜디오’가 설립된다.131 그 시작에 대해 59번가에 있는 그리스 레스토랑에서의 만남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시작인 스타니슬랍스키와 단첸코의 18시간 대화와 비교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그룹 시어터를 재현하자는 것이 처음에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Garfield 46-50). 그러나 시작점이 언제이고 누구의 의견이 먼저였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이들 세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작업하며 한계에 부딪혔고, 그로 인해 그룹 시어터에서 함께 했던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액터스 스튜디오를 통해 그룹 시어터의 실험을 이어가고자 했음은 액터스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그룹 시어터의 초기 실험이었던 시어터 길드 스튜디오가 모태라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Carnicke, Stanislavsky in Focus 47).
이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훈련된 배우다. 1941년 그룹 시어터 해체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으로 배우훈련을 하는 전문집단이 미국에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했고, 준비되지 않은 배우들과의 7년간 작업을 통해 연기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연출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카잔은 짧은 상업극 연습 기간에 배우들에게 기본기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힘들어했다. 그는 액터스 스튜디오 개회식에서 “우리는 공통의 언어를 원한다. 그래야 내가 배우들을 지도하는 대신 연출을 할 수 있다”(Garfield 54)고 말하며, 그룹 시어터에 이어 시스템을 공통의 언어로 사용하여 배우를 훈련할 것을 선언한다. -(중략)-
액터스 스튜디오는 단순한 배우들의 연기훈련 장소를 넘어서 배우에 대한 존중이 깃든 곳이기를 원했다. 1947년 10월 카잔은 학생들을 임시로 맞이하면서부터 이곳을 미국 배우들의 ‘고향(Homeland)’이라 칭하며 배우들을 위한 곳임을 표명한다(Gordon, Stanislavsky in America 125). 그는 1973년 12월 6일에 진행된 액터스 스튜디오의 26주년 기념식 연설을 통해서도 액터스 스튜디오가 배우를 위해 탄생했음을 상기시켰다.
(pp.134~136 중에서)
메소드 교사들이 시스템을 흡수한 미국 실험극장의 행동에 관한 태도에서 먼저 그 원인을 확인하기로 한다. 미국 실험극장은 행동이 수동적인 상태에 머무를 수 없는 정신적 움직임이라는 것과 ‘to 부정사’를 사용하여 행동의 ‘목적’을 분명히 했고, 역할의 주요 행동을 찾으며 ‘일관된 흐름’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Fergusson 85). 그러나 볼레슬랍스키가 은유적으로 표현한 그의 행동 개념은 실제 적극적인 적용과는 다르게 모호하다.
저 나무를 보라. 그것은 모든 예술의 주인공이다. 그것은 행동의 이상적인 구조다. 상향 운동과 측면 저항, 균형과 성장이 있다. […] 나무의 나머지 부분과 조화를 이루며 곧고 균형을 이루고 나무의 모든 부분을 지지하는 줄기를 보라. 그것은 긴장을 주도하고 있다. 음악에서의 “라이트 모티프(Leitmotif)”, 연극에서 연출의 행동에 관한 생각, 건축가의 기초, 소네트(Sonnet)에 담긴 시인의 생각이다. (Boleslavsky 56)
이전 장에서 논의되었던 정서 기억을 설명하면서 살인을 모기 죽이는 것에 비유하며 극단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했던 것에 반해,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가 다른 요소들에 비해 행동을 직접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도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퍼거슨은 미국 실험극장이 행동을 강조하였지만, 교사들의 언어적 한계로 연기 시연으로만 행동을 이해해야 했다고 한다(85). 모호한 설명과 언어적 한계에서 만들어진 미국 실험극장의 행동에 관한 이해는 행동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메소드 교사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pp.223~224 중에서)
4. 저자 소개
배민희
1997년 KBS 19기 공채 탤런트로 방송에 데뷔해 2000년 KBS ‘여자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중앙대학교에서 문학사, 예술학석사, 공연예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배우로 활동하면서 모교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 중이다.
이 책은 배민희의 2022년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 학위 논문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Stanislavsky′s System)의 지형학 연구: 시스템에서 메소드(Method)로의 진화를 중심으로」를 수정 보완하여 출판한 것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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