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派閥(파벌)의 중국 정치 – 마오쩌둥(毛澤東)에서 시진핑(習近平)까지]
[李昊(LI Hao) 지음, 양갑용·이혜경 옮김, 이희옥(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감수]
[책소개]
중국공산당 100년의 권력 투쟁과 파벌의 역사를 파헤친다!
정치학 비전문가도 빠져들게 하는 생생한 서술에 압도된다!
「일당 독재」 배후에서 움직이는 것!
공식적으로는 존재를 부인하면서 권력투쟁과 정책 논쟁의 전개를
근본적으로 규정해 온 중국공산당의 파벌 집단.
그 숨겨진 실태와 다이나미즘(dynamism)을 확실하게 뽑아내서,
신중국 성립 이전부터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흐름을
새로운 시점에서 재해석한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파벌」이 담당하는 진정한 역할이란?
저자 李昊(LI Hao)는 비교정치학의 파벌 연구와 중국 정치사를 결합해, 일당 독재 체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파벌의 성쇠와 정쟁을 추적한다. 레닌주의 정당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된 분파 활동이 어떻게 수면 아래에서 이어지고, 직연·지연 등 인맥을 기반으로 협력 관계를 형성하며 당내 권력 구조를 규정해 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공의 파벌은 마오쩌둥 시대의 가혹한 정치투쟁에서부터 포스트 마오쩌둥 시대의 정치 제도화 과정 속에서 점차 다층적이고 대규모의 집단으로 발전해왔다. 시진핑은 마오쩌둥과 달리 권력 집중과 인사 배치를 통해 자신만의 파벌을 구축하며 독재자라기보다 파벌적 성향을 강화한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서 장 파벌과 정쟁
- 파벌 연구의 이론적 틀 -
제1장 중국에서 파벌의 역사와 특징
- 북양군벌・중국국민당・중공 -
제2장 마오쩌둥의 파벌 조작술
- 혁명전략과 ‘국제파’・저우언라이・류샤오치 -
제3장 「린뱌오 집단」과 문화대혁명
- 마오쩌둥 독재의 완성과 장칭 -
제4장 위추리의 「석유방」과 「양약진」
- 화궈펑 경제발전 전략의 좌절 -
제5장 천윈・「경제 보수파」와 개혁・개방
-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 재고 -
제6장 장쩌민의 「상하이방」과 사회주의의 변용
- 정치 제도화와 후진타오・시진핑 -
종 장 중공과 파벌
- 레닌주의와 비교의 시점 -
본서는 중공 성립부터 2023년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넘는 당의 전 역사를 분석 대상으로 중공의 파벌에 주목하여, 그 영고성쇠의 과정과 정쟁과의 연동을 분석함으로써, 파벌이 당내에서 권력 기반으로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행위로 기능해 왔음을 밝힌다. 또한 파벌의 활동이 중공 내부에 일정한 다양성을 창출하고 중국 정치 변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일당 독재 체제의 강인성을 제고해 왔음을 지적한다.


1. 서문 및 서평
1 파벌의 연구 과제
중국 정치에서 일당독재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파벌은 오랫동안 주요한 관심사로 자리해 왔다. 문화대혁명기 「린뱌오 집단」에서부터 장쩌민의 「상하이방」, 후진타오의 「공청단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벌이 중국 정치를 극적으로 형성해 왔다. 파벌 간 권력 투쟁은 중국 정세 보도의 핵심적 소재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5년마다 개최되는 중공 전국대표대회(이하 당대회)가 다가오면 파벌 구도를 중심으로 차기 지도부 인선을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중국의 향방을 전망한다.
그러나 중공은 분파 활동을 금지하는 레닌주의적 조직 원리에 따라 당내 파벌의 형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비공식적 행위이기 때문에, 그 활동의 실태가 외부에 드러나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파벌을 둘러싼 논의는 종종 인상론이나 추측에 근거한 수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중공의 파벌은 실제로 어떠한 존재이며, 어떠한 활동 양상을 보이고 있고, 중국 정치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쳐 왔는가.
본서는 중공의 파벌에 주목하여 그 영고성쇠의 과정과 정쟁과의 연동을 분석함으로써, 파벌이 당내에서 권력 기반으로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행위로 기능해 왔음을 밝힌다. 또한 파벌의 활동이 중공 내부에 일정한 다양성을 창출하고 중국 정치 변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일당독재 체제의 강인성을 제고해 왔음을 지적한다.
본서는 중공 성립부터 2023년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넘는 당의 전 역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비교역사분석 방법을 활용하여 대표적 파벌을 선정하고, 사례 연구를 통해 각 파벌의 성쇠 과정과 정쟁과의 연동을 실증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중국 정치에서 파벌이 수행해 온 기능과 그 중요성을 규명한다.
본 장은 논의 전개의 출발점이 되는 파벌의 이론적 분석 틀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 절에서는 우선 중국 정치 연구와 비교정치 연구의 선행 연구를 정리한 뒤, 이를 토대로 본서의 학문적 공헌을 제시한다.
본서는 중공의 파벌에 대해 상세한 실증 분석을 수행하지만, 단순한 정치사 연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아가 일당독재 체제하에서의 정쟁과 체제 지속의 메커니즘을 해명함으로써 이론적 차원에서 기여하고자 한다.
이 책의 기여
상술한 선행 연구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본서는 일당독재 체제의 집권당인 중공을 대상으로 비교정치학에서 축적된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파벌의 활동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단순히 파벌이 중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만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종래 선행 연구의 의의를 재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다. 본서는 파벌의 영고성쇠 과정이 정쟁의 원동력임을 강조하며, 파벌 간 경쟁이 중공의 적응력을 높여 권위주의 체제의 강인성에 기여하고 있음을 밝힌다. 종래 중국 정치 연구와 비교정치 연구가 간과해 온 동태적 파벌관을 제시하고, 권위주의 체제의 지속이라는 정치체제론의 핵심 문제에 이론적으로 기여하는 데 본서의 의의가 있다.
2 파벌이란 무엇인가
중국 정치에서 파벌은 실로 혼란을 일으키기 쉬운 개념이다. 중공의 파벌이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조직화된 집단이 아닌 것은 널리 이해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실태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석자는 흔히 정치 엘리트의 경력에 주목해, 엘리트끼리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으로 파벌의 존재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석유 부문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석유방」으로 분류되기 쉽다. 그러나 그 인물이 실제로 「석유방」의 수령으로 여겨지는 저우융캉(周永康)과 개인적인 유대를 가지고 있다고는 한정할 수 없다. 통상 파벌이라는 말로부터 상정되는 것은 이러한 개인 간의 협력 관계이다. 비밀주의적이고 정보가 부족하기 쉬운 중공의 파벌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현실로서 다소의 추측은 불가피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치 엘리트 간의 협력 관계로부터 파벌의 존재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본 절에서는 논의의 토대가 되는 중공 파벌의 정의를 제시하고 싶다
중공 파벌의 은고주의(恩顧主義)적 구조
파벌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그 성격은 다양하다. 따라서 분석 대상에 따라 다양한 정의가 제시될 수 있다. 비교정치학에서 파벌 연구의 초기 대표적 업적 중 하나로, 라파엘 자리스키는 파벌을 “공통의 정체성과 목적을 공유하며 조직화된 당내 집단”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집단의 공통성과 조직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파벌을 분석하려는 연구가 다수 발표되었으며, 주로 서유럽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 내 파벌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 틀을 중공과 같이 느슨한 인맥으로 구성되며 반드시 공통의 정책 선호를 공유한다고 보기 어려운 파벌에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3 파벌의 역동성
중공에서 파벌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내 정치 과정에서 구체적인 활동과 역할을 수행한다. 이 절에서는 파벌 활동의 역동성을 살펴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논의를 전개한다. 먼저 파벌 내부의 정치 역학을 살펴본다. 다음으로 파벌의 합종연횡(合従連衡)을 논한다. 세 번째로, 파벌의 다양성과 변용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파벌의 성쇠와 정쟁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본서는 파벌이 단순한 개인적 유대의 집합이 아니라, 중공 당내 권력 구조와 정치 변동의 핵심 동력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파벌의 성쇠와 정쟁
권력의 영고성쇠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파벌도 예외가 아니다. 파벌은 형성되어 세력을 확대하고 영향력을 증대시키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쇠퇴하기 시작하고, 점차 축소되어 결국 소멸한다. 파벌의 성쇠 과정은 정쟁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파벌의 성장과 쇠퇴, 그리고 정쟁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4 파벌과 권위주의 체제의 강인성
파벌은 일반적으로 정치의 병리 현상으로 인식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이는 미국 건국 당시의 사례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의 자민당에서도 여러 차례 파벌 해소 시도가 이루어진 바 있
다. 즉, 파벌은 어느 사회나 정치 체제에서 일정한 위험이나 문제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중공을 비롯한 레닌주의 정당은 공식적으로 분파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벌의 존재는 널리 인식되어 있으며, 파벌이 활발히 활동함에도 불구하고 중공이 오늘날까지 높은 단결력과 강인한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하다. 본 절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권위주의 체제의 강인성이라는 관점에서 파벌의 역할을 논하고자 한다.
2. 목차
범례 • 2
지도 • 8
서장 파벌과 정쟁 • 9
- 파벌 연구의 이론적 틀 -
1. 파벌의 연구과제 13
2. 파벌이란 무엇인가 20
3. 파벌의 역동성 31
4. 파벌과 권위주의 체제의 강인성 45
제1장 중국에서 파벌의 역사와 특징 • 51
- 북양군벌・중국국민당・중공 -
1. 근대 중국의 파벌 54
2. 중공 파벌의 역사와 특징 68
제2장 마오쩌둥의 파벌 조작술 • 85
- 혁명전략과 ’국제파’・저우언라이・류샤오치 -
1. 중공 성립과 소비에트 혁명
- 마오쩌둥의 대두 92
2. 장정
–혁명전략을 둘러싼 대립 113
3. 옌안 시기 이후
- 마오쩌둥의 지도권 확립 132
소결 163
제3장 「린뱌오 집단」과 문화대혁명 • 167
- 마오쩌둥 독재의 완성과 장칭 -
1. 루산 회의와 문화대혁명의 발동
- 「린뱌오 집단」의 등장과 대두 176
2. 제9차 당대회 전후
- 문화대혁명을 둘러싼 대립 199
3. 9.13 사건
– 「린뱌오 집단」의 붕괴 217
소결 233
제4장 위추리의 「석유방」과 「양약진」 • 239
- 화궈펑 경제발전 전략의 좌절 -
1. 다칭유전 개발부터 문화대혁명까지
- 「석유방」 형성과 대두 247
2. 「양약진」–경제발전 전략을 둘러싼 대립 264
3. 보하이 2호 사건 이후
- 「석유방」의 퇴조 281
소결 292
제5장 천윈·「경제 보수파」와 개혁·개방 • 297
-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 재고 -
1. 개혁·개방의 개시
– 「경제 보수파」의 출현과 대두 308
2. 6·4 천안문 사건의 길
– 개혁·개방을 둘러싼 논쟁 322
3.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 「경제 보수파」의 소멸 353
소결 364
제6장 장쩌민의 「상하이방」과 사회주의의 변용 • 367
- 정치 제도화와 후진타오・시진핑 -
1. 장쩌민 집권기
– 「상하이방」의 형성과 대두 376
2. 후진타오 집권기
–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둘러싼 대립 400
3. 시진핑 집권기
– 「상하이방」의 쇠퇴 417
소결 443
종장 중공과 파벌 • 451
- 레닌주의와 비교의 시점 -
1. 중공에서 파벌의 역할과 변용 454
2. 비교 속의 파벌 470
미주 • 481
후기 • 542
참고 문헌 • 550
도표 일람 • 578
색인 • 583
3. 본문 중에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당쟁」이 벌어져, 이 점에서 파벌 간의 싸움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청 말 이후 근대국가에 대한 지향이 높아지면서 군벌과 정당 등 근대적 정치 집단이 등장하였다. 본 절에서는 근대 중국, 특히 중화민국기의 파벌을 간단히 소개한다.
베이징 정부기에는 의회 정치의 징후가 나타났지만, 군벌 할거에 의한 혼란에도 휩쓸렸다. 당시 중심적 행위자인 북양군벌은 안휘파(安徽派), 직예파(直隸派), 봉천파(奉天派)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하였다. 1920년대 후반이 되면 국민당이 광둥(廣東)에서 북벌을 추진하고 난징 국민정부를 수립하여 북경 정부를 타도했으나, 국민당 내부 역시 격렬한 파벌 대립에 시달렸다.
(p.54 중에서)


장시(江西)에서 마오쩌둥의 대두
상하이의 당 중앙은 국민당의 탄압과 잇따른 도시 폭동의 실패로 거의 활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편 농촌 지역에서는 활동이 확대되었고 각지에 세워진 근거지에서는 소련을 본떠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장시성 남부와 푸젠성(福建省) 서부에서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세워진 중앙 소비에트이다(그림 2–2). 마오쩌둥은 일찍부터 농민 운동과 군사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1927년 가을 그는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한 당의 지시에 따라 후난성과 장시성의 경계 지역에서 ‘추수 봉기’를 지휘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는 잔여 부대를 이끌고 장시성과 후난성의 경계에 있는 징강산에 근거지를 세웠다. 그곳에서 토지 개혁을 실시하며 실질적인 통치를 이어 갔다.
(p.105 중에서)
1979년 천윈의 제안으로 국무원 재정경제위원회가 설립되자, 「석유방」의 경제 정책에서의 영향력은 단번에 축소되었다. 이어 1979년 11월에는 석유공업부 소속 석유시추선 「보하이(渤海) 2호」가 침몰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는 석유 부문의 위신을 더욱 손상시키며 「석유방」을 한층 더 구석으로 몰았다.
그 후 1980년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신설되었고, 위추리가 주임을 맡으면서 국계위를 벗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른 「석유방」 회원들도 차례로 석유공업부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석유방」은 거시경제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이후 파벌로서 경제 정책 전반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일은 사라졌다. 그러나 석유 산업은 여전히 공업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석유방」 출신 인재들은 지속적으로 배출되었다. 위추리는 또한 덩샤오핑과의 유대를 활용해 출신 모태인 군으로 복귀하며 개인 경력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p.281 중에서)
경제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줄다리기
천윈은 경제 정책에서 일관된 입장을 유지했고 마오쩌둥에게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냉대를 받는 일이 잦았다. 특히 문혁 중에는 박해를 받아 당 부주석과 정치국 위원 직책도 박탈당했다. 천윈이 다시 정치의 전면 무대로 부활한 것은 마오쩌둥 사후, 화궈펑 정권 하에서다.
「4인방」 실각 후 천윈은 1978년 말 중앙공작회의와 이어진 11기 3중전회에서 당 부주석으로 복귀했다. 이 천윈의 재등장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을 텐데, 그중 하나는 문혁 이전부터 당 지도자로 활약한 경력이다. 문혁 발동 이전인 1956년 제8차 당대회에서 부주석으로 선출된 인물은 류샤오치, 저우언라이, 주더, 천윈이었다. 이 시점에서 천윈은 린뱌오나 덩샤오핑보다 높은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후 류샤오치, 저우언라이, 주더는 문혁 중 사망했고, 제8차 당대회 당시 당 부주석으로 생존한 사람은 천윈뿐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천윈의 당 부주석 복귀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천윈의 당 부주석 복귀를 강하게 지지한 인물은 야오이린이다. 여기서 야오이린은 천윈의 대리인으로서 기능했다.
(p.312 중에서)
일련의 경제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서 장쩌민은 좌파와 우파 사이에 위치하면서 시장화 추진을 지지하는 한편, 좌파의 입장도 배려하는 데 힘썼다. 주룽지와 장쩌민은 협력 관계에 있었으나 반드시 긴밀한 관계는 아니었으며 파벌이라 부를 만한 것도 아니었다. 1999년 NATO에 의한 베오그라드 주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이 발생하고 반미 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주룽지는 WTO 가맹 교섭을 위해 양보를 포함한 타협안을 들고 방미하여 국내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장쩌민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1990년대 사회주의의 변용을 둘러싼 정쟁은 보수세력과 주룽지를 중심으로 한 시장화 추진 세력 사이에서 전개되었다. 장쩌민은 정쟁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며, 자신의 입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쩡칭훙과 우방궈 등 상하이파도 마찬가지였으며, 일련의 정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p.396 중에서)
또한, 시진핑이 「마오쩌둥화」 한다거나 마오쩌둥을 목표로 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파벌의 관점에서 시진핑과 마오쩌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제2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마오쩌둥은 파벌 조작술에 능한 인물이었지만, 반드시 자신의 추종자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파벌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마오쩌둥과는 대조적으로, 시진핑은 파벌적인 인물이다. 왕치산(王岐山)이나 리잔수(栗戰書) 등의 오랜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푸젠(福建)이나 저장(浙江), 상하이(上海)의 부하들을 믿고 자신의 추종자로 발탁했다. 시진핑은 오히려 파벌에 강하게 의존하며 이러한 노골적인 측근 편애로 인해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해 온 것이다.
본 절에서는 시진핑 집권기 장쩌민과 「상하이방」에 대해 논했다.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에도 파벌 활동은 저조해지지 않았다. 시진핑은 반부패 투쟁을 통해 정적을 타도하는 한편, 자신의 추종자들을 대거 발탁하고, 거대한 파벌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시진핑은 권력 장악을 지속했으며, 2021년 「역사 결의」를 거쳐 2022년 가을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유임되었고, 최고 지도부도 자신의 추종자로 굳혔다. 장쩌민은 효과적인 저항을 보이지 않았고, 「상하이방」은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2022년 말, 장쩌민은 사망하였고, 그 「상하이방」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시진핑의 파벌은 절정기를 맞고 있지만, 시진핑 유임으로 권력 교체를 둘러싼 룰이 크게 훼손되면서 예측 가능성이 저하되고, 심각한 리스크도 생겨나고 있다. 후계자 문제, 특히 시진핑과 추종자들 간의 대립, 혹은 시진핑 내부 갈등의 위험성은 높아질 것이다. 정책적 다양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으며, 중국 정치의 장래를 내다보는 것은 한층 곤란해지고 있다.
(pp.441-442)
4. 저자 소개
저자 李昊(LI Hao)
[약력]
2011년 3월: 도쿄대학교 교육학부 종합교육과학과 비교교육사회학 코스 졸업
2013년 3월: 도쿄대학교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종합법정전공 석사과정 수료
2020년 9월: 도쿄대학교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종합법정전공 박사과정 수료
[경력]
2019년 11월~현재: 공익재단법인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2022년 4월~2024년 3월: 고베대학교 대학원 국제문화학연구과 강사
2024년 4월~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법학부 준교수
[관심 분야]
비교정치, 현대중국정치, 동아시아국제관계, 중국대외정책
[수상]
2020년 9월 박사학위 논문 특별 우수상 수상
(도쿄대학교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2023년 7월 前之園기념청년우수논문상 수상 (敬愛마치즈쿠리재단, 고베대학교)
[주요 저작 및 논문]
『派閥の中国政治–毛沢東から習近平まで』(名古屋大学出版会, 2023), 『中国共産党新政治局常務委員の“プロファイリング”』(日本国際問題研究所, 2019), 『習近平政権研究』(공저, 2023), 『党大会を控えた習近平政権の動向』(공저, 2022), 『習近平政権が直面する諸課題』(공저, 2021), 『中国の対外政策と諸外国の対中政策』(공저, 2020), 『中国の対外政策と諸外国の対中政策』(공저, 2019), 「習近平政権の安定性と対外政策-権力闘争の視点から」, 『中国の対外政策と諸外国の対中政策』(공저, 2019), 「中国新指導部の“プロファイリング” ⑥-丁薛祥 習近平の側近中の側近」, 『China Report』(공저, Vol.27, 2018), 「最高指導部-政治局常務委員の横顔」, 『外交』(공저, 제46호, 2017), 「全人代の注目人事–中国国家機関の新指導者たち」, 『外交』(공저, 제48호, 2018), 李昊. 「習近平政権の10年と第20回党大会への展望」, 『東亜』(공저, 8월호, 2022), 「習近平派一色の新指導部 政治局常務委員の顔ぶれ」, 『外交』(공저, 제76호, 2022)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China Confronting the New Administrations of the United States and Japan」(East Asian Policy, 2025), 「なぜ習近平が選ばれたのか」(近代, 2024), 「習近平の人脈」(国際文化学研究, 2023), 「習近平政権の10年と第20回党大会への展望」(東亜, 2022), 「Xi Jinping’s Dominance in China’s Foreign Policy」(East Asian Policy, 2022), 「Hua Guofeng and China’s transformation in the early years of the post-Mao era」(Journal of Contemporary East Asia Studies, 2022) 등이 있다.
감수 이희옥(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역자 양갑용(楊甲鏞)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중국 푸단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와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원을 거쳐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관심 및 연구 분야는 중국의 국내 정치 변화와 한·중 관계, 북·중 관계 등이다. 특히 중국의 엘리트 정치 변화 및 후계 구도, 엘리트 충원, 간부 제도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연구 성과로는 양갑용, 김덕삼, “종교와 정치의 상관성: 로마 교황청과 중국의 수교 가능성에 주목하여,” 『중국지식네트워크』, 2024.11, pp.117-144,; Yang Gabyong, “Xi Jinping’s Third Term and Updates in China’s Inner Politics,” 『Korea-US-China trilateral relations in the Xi Jinping era: complexity, conflict, and interdependence』 edited by Duck-Koo Chung and Byung-se Yun with the NEAR Foundation, Published by Rowman & Little, 2025, pp.53-90.; 양갑용, “당국가체제와 능력주의 혁신,” 이희옥 엮음, 『중국의 미래, 대안을 묻다』(서울: 솔과학, 2025), pp.267-326.; 양갑용,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부 구성 관행의 구조화: ‘의중’과 ‘단계별 승진’의 결합,” 『중국사회과학논총』, 2026.02. 8권 1호, pp.36-67. 등이 있다.
역자 이혜경(李惠慶)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도쿄대학교 대학원 초역문화과학전공 비교문학비교문화코스 석사과정 졸업
도쿄대학교 대학원 초역문화과학전공 비교문학비교문화코스 박사과정 수료
번역서로는 『패션 비즈니스 경영 입문』, 『법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등이 있다.
* 앞표지 그림 : 아름다운 흔적 a beautiful trace. 2024, 공병
* 뒷표지 그림 : 관계 Relationship. 2024, 공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