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격몽요결(擊蒙要訣)](율곡 이이 저, 유성선·유정은 공역)
1. 책소개
우리 시대에 왜 다시 “격몽요결擊蒙要訣”인가?
시대는 변해도 인간의 본질과 학문에 대한 영원한 우리의 고전, “격몽요결擊蒙要訣”!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이상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아버지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하고,
형제간에 있어서는 마땅히 우애가 있어야 하고,
젊은이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마땅히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의 모든 일은 각각 그 일에 따라 마땅하게 해야 할 뿐이니,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효과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간략하게 한 권의 책을 써서 대략 뜻을 세우는 법, 몸가짐을 단속하는 법, 부모님을 봉양하는 법,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를 『격몽요결』이라고 이름하였다. ”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것을 깨우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AI, 메타버스 시대의 사회가 바라는 훌륭한 인격을 지닌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수신서!
“간략하게 한 권의 책을 써서 대략 뜻을 세우는 법, 몸가짐을 단속하는 법, 부모님을 봉양하는 법,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를 『격몽요결』이라고 이름하였다. ”
『격몽요결』은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이 1577년 만년 42세(선조 10년) 되던 해에 황해도 해주 은병정사(隱屛精舍)에서 저술한 책으로 《율곡전서》 27권에 들어 있다. 율곡 선생은 배우기를 청해 온 초학자들에게 일일이 응대하는 것을 대신해 교재로 『격몽요결』을 저작하여 실천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수신서이자 인성교육 교재인 『격몽요결』은 유학의 기초 수신서인 『소학』의 선수서(先修書)로서, 한자를 습득한 후 유학의 입문단계에 초학자들을 위한 동몽교재로 널리 활용되고 보급되었다. 또한 『격몽요결』은 향교나 서원의 교재로 조정에서 배포하여 사용했는가 하면 일반 학자들에까지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숙독함으로써 초학자의 교재로서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2. 목차
역자 서문 • 4
서(序) • 12
제1장 입지(立志; 뜻을 세우다) • 19
제2장 혁구습(革舊習; 낡은 습관은 고쳐야 한다) • 27
제3장 지신(持身; 나의 몸을 처신하는 방법) • 33
제4장 독서(讀書; 학문을 하는 방법) • 49
제5장 사친(事親; 부모님을 섬기는 방법) • 59
제6장 상제(喪制; 상례에 관한 절차와 법도) • 69
제7장 제례(祭禮; 제사를 모시는 절차와 법도) • 83
제8장 거가(居家; 집안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 • 93
제9장 접인(接人; 사람을 대하는 예절) • 107
제10장 처세(處世;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 119
附 제의초(祭儀鈔; 제사하는 의식을 가려 뽑은 글) • 127
『격몽요결(擊蒙要訣)』 정조의 서문(序文) • 184
격몽요결 자료 • 190
율곡 이이의 생애(연보)와 관직 • 194
3.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 율곡 이이의 생애(연보)와 관직
- 1536년(중종31년) 1세 : 12월 26일 강릉부 북평촌 외가에서 출생함. 부친은 이원수(李元秀), 모친은 신사임당(申師任堂), 본관은 덕수(德水), 字는 숙헌(叔獻), 號는 율곡(栗谷), 시호는 문성(文成)
- 1541년(중종36년) 6세 : 강릉에서 한양으로 올라옴.
- 1542년(중종37년) 7세 : 「진복창전(陳復昌傳)」 지음.
- 1543년(중종38년) 8세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화석정(花石亭)」 시 지음.
- 1545년(중종40년) 10세 : 「경포대부(鏡浦臺賦)」 지음.
- 1548년(명종3년) 13세 : 진사초시에 장원급제함.
- 1551년(명종6년) 16세 : 5월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선비행장」을 지음. 파주 두문리에 어머니를 장례하고 3년간 시묘함.
- 1554년(명종9년) 19세 : 우계 성혼(1535~1598)과 도의의 교분을 맺음. 3월 어머니 시묘 3년을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함.
- 1555년(명종10년) 20세 : 금강산에서 강릉으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유학에 전념함.
- 1556년(명종11년) 21세 : 봄에 한양으로 돌아와 漢城試에 장원급제함.
- 1557년(명종12년) 22세 : 9월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 노씨와 혼인함.
- 1558년(명종13년) 23세 : 봄에 경북 예안 도산(陶山)을 방문하여 퇴계 이황을 만남. 겨울에 別試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급제함.
- 1561년(명종16년) 26세 : 5월 아버지 이원수 별세.
- 1564년(명종19년) 29세 : 7월 생원 진사시에 장원급제함. 8월 明經試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으로 첫 벼슬길에 나아감.(모두 9번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림.)
- 1565년(명종20년) 30세 : 봄에 예조좌랑에 전임. 8월 요승(妖僧) 보우(普雨)와 권간(權奸) 윤원형(尹元衡)을 단죄하는 상소를 올림. 11월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자 사퇴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불허.
- 1566년(명종21년) 31세 : 2월 병조좌랑에, 3월 다시 사간원 정언에 임명됨. 겨울에 이조좌랑에 임명됨.
- 1568년(선조원년) 33세 : 2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됨. 가을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돌아와 홍문관 부교리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에 임명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함. 11월에 다시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가 강릉 외조모 이씨의 병환으로 사직하고 강릉으로 내려감.
- 1569년(선조2년) 34세 : 6월 교리에 임명됨. 9월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올림.
- 1570년(선조3년) 35세 : 4월 교리에 임명됨. 10월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 1571년(선조4년) 36세 : 1월 이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여름에 교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6월 청주목사에 임명됨.
- 1572년(선조5년) 37세 : 여름에 부응교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파주로 돌아감. 8월에 원접사 종사관, 9월에 사간원 사간, 12월에 홍문관 응교, 홍문관 전한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퇴함.
- 1573년(선조6년) 38세 : 7월 홍문관 직제학에 제수되었으나 3차례 상소를 올린 후 사임하고 8월에 파주로 돌아감. 9월 다시 직제학에 임명되어 사퇴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함. 겨울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임명됨.
- 1574년(선조7년) 39세 : 1월 우부승지에 임명되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올림. 3월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됨. 10월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됨.
- 1575년(선조8년) 40세 : 8월 홍문관 부제학으로 임명됨. 9월 『성학집요』를 지어 올림.
- 1576년(선조9년) 41세 : 우부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전라감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병으로 나아가지 않음. 10월 해주 석담에 청계당을 지음.
- 1577년(선조10년) 42세 : 1월 해주 석담에서 「동거계사」를 지음.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2월 『격몽요결』 지음.
- 1578년(선조11년) 43세 : 해주 석담에 은병정사를 지음. 3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6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79년(선조12년) 44세 :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80년(선조13년) 45세 : 5월 「기자실기」 지음. 9월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 12월 대사간에 임명.
1581년(선조14년) 46세 6월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다시 예문관 제학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8월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됨. 9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0월 호조판서에 제수됨. 11월 『경연일기』 완성
- 1582년(선조15년) 47세 : 1월 이조판서에 제수됨. 7월 선조의 명으로 「인심도심설」, 「김시습전」, 「학교모범」, 「사목(事目)」을 지어 올림. 8월 형조판서에 임명됨. 9월 의정부 우참찬에 임명되고 숭정대부로 특진. 10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가 되어 「극기복례설」을 지음. 12월 병조판서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3년(선조16년) 48세 : 2월 「시무육조」 지어 올림. 3월 경연에서 십만양병을 건의함. 6월 동인의 탄핵을 받고 파주로 돌아갔다가 7월에 석담으로 돌아감. 9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4년(선조17년) 49세 : 1월 「육조방략」을 최후로 지음. 1월 16일 한양 대사동에서 별세함. 3월 20일 파주 자운산에 안장됨.
- 1624년(인조2년) : 문성(文成)의 시호를 받음.
- 1681년(숙종7년) : 문묘의 종사를 허락받음.
[역자] : 유성선, 유정은
- 유성선
강원대학교 및 대학원을 수료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栗谷心論硏究」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강원대학교 인문학부 철학전공 교수이다. 중국 정강산대학과 월수외국어대학 객원교수로, 전 한중인문학회장과 현 율곡학회장으로 소임 중이다.주요저서및 논문으로 「율곡심론연구」(박사학위논문), 『율곡의 『순언(醇言)』: 유학자의 노자 『도덕경』 이해』(공역), 『일곱주제로 만나는 동서비교철학』(공역), 『율곡철학의 이해』(저서), 『경연일기』(공역), 「율곡철학의 일상과 이상의 글로컬 실천 연구」(논문), 「「기자실기」의 기자동래설 분석과 철학실천 연구」(논문), 「『순언(醇言)』의 일상과 이상에 관한 연구-‘경계(境界)’의 범주를 중심으로-」(공저논문), 「4차 산업혁명 AI시대 인성교육의 방법과 전망(논문)등 다수이다.
- 유정은
강원대학교 철학실천연구소 연구교수.강원대학교 철학과에서 「신사임당 예술철학 연구」로 박사학위 를 받았다. 한국철학과 여성철학,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그시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주요 연구 실적으로는 저서 『사임당 평전』(2016), 번역서『경연일기』(2023, 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율곡의 「선비행장」에 나타난 신사임당 연구」(2019), 「신사임당 의 소재에 나타난 상징성 연구」(2021), 「이매창의 회화 연구」(2021), 「임윤지당의 『윤지당유고』에 나타난 안회 연구」(2022), 「『윤지당유고』의 傳에 구현된 여성관 연구」(2022), 「율곡의 「경포대부」에숨겨진 신사임당의 사상 연구」(2023), 「강정일당의 「척독」에드러난 공부론 연구」(2024) 등이 있다.
4. 서문 및 출판사 서평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이상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아버지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부가 되어서는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하고, 형제간에 있어서는 마땅히 우애가 있어야 하고, 젊은이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마땅히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의 모든 일은 각각 그 일에 따라 마땅하게 해야 할 뿐이니,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효과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학문에 힘쓰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학식과 견문이 좁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땅히 행할 도리를 밝힌 뒤에야 학문의 바름을 얻어 깊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고 실천함에도 바른 도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도 모르고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스스로 자포자기함을 편안히 여기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황해도 해주의 남쪽에 거처를 정하자 한두 명의 학생이 찾아와 배움을 청했다.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될 만한 자질이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또한 처음 학문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 그 방향을 알지 못하고, 또 견고한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게 되면 피차간에 도움 됨이 없고 도리어 남의 비웃음만 사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간략하게 한 권의 책을 써서 대략 뜻을 세우는 법, 몸가짐을 단속하는 법, 부모님을 봉양하는 법,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를 『격몽요결』이라고 이름하였다. 이에 배우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서 즉시 공부에 임하게 하고, 나 또한 오랜 습관에 얽매어 있던 것을 근심했는데, 이것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이처럼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은 수신서이자 인성교육 교재이다. 우리는 『격몽요결』을 통해서 항상 ‘경건하고 진지하고 겸손하게’ 일에 응하고, 항상 마음을 점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역자는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의 요체는 AI, 메타버스시대에서도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즉 이것은, 21세기의 사회가 바라는 훌륭한 인격을 지닌 인간은 『격몽요결』에 근거한 수양공부를 통해서 배출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기질은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성을 지니기 때문에, 후천적인 수양과 공부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기질을 청수(淸粹)하게 변화시킴으로써 타고난 우주의 본체를 온전하게 보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유학은 궁극적으로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 즉 성학(聖學)이며 성인이 되는 것은 도덕적인 측면에서 이상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유학은 도덕적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목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고, 그렇기 때문에 유학에서는 인성교육과 수양공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땅의 초학자들이 부디 『격몽요결』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과 위안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5. 본문 중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는 뜻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서 털끝만큼도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대개 보통 사람도 성인과 그 본성은 동일하다. 비록 사람에 따라 기질이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혼탁한 차이가 있지만, 진실로 참되게 알고 참되게 행하여 그 낡은 버릇을 버리고 본래의 본성을 되찾게 된다면, 털끝만큼도 보태지 않아도 온갖 선(善)함이 다 갖추어질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도 어찌 성인되기를 스스로의 목표로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말씀하시며 늘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어 선한 본성을 실제로 증명하면서 ‘사람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어찌 우리를 속이시겠는가.
(pp.21~22 중에서)
무릇 사람들이 부모님에게 당연히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효도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은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경』에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그 은혜를 갚으려면 하늘과 같아 끝이 없다.”라고 이르지 않았던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받은 생명과 혈육은 모두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다. 그래서 숨을 쉬고 호흡하는 것과 기운과 맥박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중략)-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부모님을 섬기는 시간이 오래일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식 된 사람은 반드시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 정성이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옛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옛날 사람은 하루 동안 부모님 봉양하는 일을 재상의 벼슬과 바꾸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옛사람들이 시간을 아끼면서 부모님을 봉양한 것을 말한 것이다.
(pp.61~65 중에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공부에 얽매어서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였다.”라고 하지만, 이것 또한 핑계의 말이지 진심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옛사람들은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몸소 농사를 지은 사람도 있었고, 돌아다니며 품팔이를 한 사람도 있었고, 쌀을 져다주고 품삯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몸소 농사를 짓고 품을 팔고 쌀을 등에 졌을 시절에 그 수고로움이 심하였을 것이다. 어느 겨를에 책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부모님을 위하여 친히 노력하며 자식의 책임을 다하고 남은 힘으로 글을 배웠음에도 덕에 나아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선비들은 옛날 사람처럼 부모님을 위하여 친히 노력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다만 과거 공부 한 가지만이 그 부모님이 바라는 것이므로 이제는 과거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공부가 비록 성리학과는 다르지만 역시 앉아서 글을 읽거나 글을 짓는 일이다. 농사를 짓고 품을 팔고 쌀을 등에 지기보다는 백배나 편할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섬기고 남은 힘으로는 성리학에 관한 서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으레 과거 급제에 마음이 동요되어 항상 초조하고 조급해 하므로, 도리어 힘을 들여 일하는 것보다 마음을 해치는 것이 더 심하다. 그러므로 선현들이 말씀하시기를 “공부에 방해될까를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그 뜻을 빼앗길까 걱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만약 과거 공부를 잘 해내면서도 그 뜻을 잃지 않는다면 과거 공부와 성리학의 공부가 병행되어 서로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겉으로는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공부에 힘을 쏟지 않고, 겉으로는 성리학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마음을 쏟지 않고 있다. 만약 과거 공부 하지 않는 것을 꾸짖어 물으면 “나는 성리학에 뜻을 두고 있어서 과거 공부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만약 성리학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꾸짖어 물으면 “나는 과거 공부에 얽매어서 진실 된 성리학 공부에 힘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중략)-
사람들이 벼슬하기 전에는 오직 벼슬에 오르기만을 급급해 하고, 이미 벼슬에 오른 뒤에는 그 벼슬을 잃을까 걱정한다. 이와 같은 생각에만 빠져서 본심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벼슬이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것을 주로 하다가 도를 행할 수 없으면 벼슬에서 물러나야 한다. 만일 집안이 가난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라의 녹봉으로 살 수 밖에 없다면 반드시 중앙의 관직을 사양하고 지방의 관직을 구해야 하며, 높은 지위를 사양하고 낮은 지위를 구하여 굶주림과 추위나 면하면 그뿐이다. 비록 생계를 위한 벼슬이더라도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직무를 받들어서 그 맡은 직무를 다해야 하며, 직분에 충실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해서는 안 된다.
(pp.122~12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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